2021년. 9월. 셋,넷째주. 언어.
- 양돌
- 2021년 9월 23일
- 1분 분량
-YDLOG

자기 연희적.
재벌은 예술을, 예술은 재물을 원한다.
문장에 설득력이 없었다.
벌충하다: 손실이나 모자라는 것을 보태어 채우다.
감정적인 연대감.
범죄에 침윤되어 있는 인물.
윤리적 선택 지점에 서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음.
용인술: 사람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능력.
인생의 상처를 침묵으로 봉인하는 사람.
한 끝.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닿을 듯 닿지 않는 한 끝 차이.
99도의 물이 100도가 되면 끓듯이.
결국 한 끝에 도달하지 못하면 99도의 물처럼 끓지 않는다.
이런 저런 변명을 늘어 놓았다.
내가 부족하다는 뻔하디 뻔한 변명.
아니, 이번엔 경쟁자가 치열했다는 치사한 변명.
아니, 그냥 내 탓이 아니라는 비겁한 변명.
한 끝이 정말 어렵다.
그 한 끝에 도달해도, 또 다시 0도가 되기 때문에 100도가 되기 위해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도 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어렵다.
유신론자는 신을 믿는다.
그래서 이러한 상황 마저 신의 뜻이지 않을까 자기 합리화를 하며 현재에 만족하며 산다.
하지만, 자기합리화를 하며 만족을 하게 되는 순간이 바로 악마가 유혹하는 순간이다.
나태.
독문학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께서는 자기착취를 하지 말라고 하셨다.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가지는 것에 죄책감을 가지지 말아라.
나태하면 어떠냐.
경쟁 사회 속에서 나를 착취하지 말고, 여유를 즐겨라.
도대체 무엇이 맞는 것일까
나태한 것이 악마일까, 나를 착취하는 것이 악마일까.
한 끝의 순간은 두 악마가 유혹하는 찰나 일 것이다.
어느 지점으로 가도 악마는 나를 마주할 것이다.
한 끝.
그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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