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 경계를 만든 자는 누구인가.
- 양돌
- 2020년 1월 2일
- 2분 분량
- YDLOG

장르: 판타지/로맨스
감독: 알리 아바시
개봉날짜: 2019.10.24
- 나는 경계선 안쪽에 있는 것일까, 바깥쪽에 있는 것일까.
나의 첫 영화 후기는 알리 아바시 감독의 '경계선'으로 정했습니다.
이유는 딱히 없다. 음. 그냥 근래에 본 영화 중 가장 강렬해서 정한 것 같아요.
좋은 영화란 무엇인지에 대해 가장 애정하는 이동진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극장에서 나왔을 때 비로소 다시 시작되는 영화가 좋은 영화다."
아마 이러한 이유로 '경계선'을 나의 첫 영화로 결정하지 않았나 싶어요.
영화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 집니다.
마치 기생충에서 문광이 초인종을 누른 순간 새로운 영화가 시작 되듯, 티나가 보레를 처음 만난 순간 다른 국면을 맞이합니다.
나와 같이 경계선 바깥에 서 있는 사람을 마주한 순간.
내가 경계선 바깥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 인식한 순간.
어떻게 보면 티나의 성장 영화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기본적으로 '나는 누구인가'로 시작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관객은 어떤 인물에게 감정을 이입할 것인지 대개 선택을 해야합니다.
하지만 티나에게 쉽게 이입하기 어렵습니다.
티나가 트롤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인 나와 전혀 다른, 다른 종족의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 될 수록 티나에게 점점 이입하게 됩니다.
아마 종족은 다르지만, 경계선 바깥에 있다는 점에서 큰 공감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자, 여성, 키가 작은 남자, 외모가 수려하지 못한 인간, 취직을 하지 못한 사람,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 애인이 없는 사람, 다른 인종인 사람, 동성애자, 좋은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사람, 어떤 이유로는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람.
나도 티나처럼 트롤이 아닐까.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란 책이 있습니다.
여기서 '호모 사케르'는 '벌거 벗은 생명'이란 뜻으로 주권 권력이 죽여도 죄가 없는, 신에게 재물로 바칠 수 없는 자를 뜻합니다.
현대에 이르러 난민 문제와 결합해 호모 사케르가 재조명 받기도 했습니다.
주류 사회에 이질적으로 끼어든 존재.
하지만 영화는 다른 질문을 던지는 듯 합니다.
경계선 바깥에 놓인 호모 사케르는 내가 아닐까.
-스포주의-
영화의 끝부분에서 티나는 경계선 안쪽에 들어가는 선택을 합니다.
트롤로 살지 않고, 인간으로 살기로 결심합니다.
경계선 바깥쪽에 놓인 존재로 인식하고, 거기에 좌절하지 않고, 다시 경계선 안쪽으로 들어갑니다.
티나는 힘든 삶을 살아야하겠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선택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치 경계선이 한 층 넓어지는 듯한 선택입니다.
어쩌면 티나는 경계선 안쪽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계선을 만든 것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경계선을 새롭게 만들면, 결국 경계선 따위는 없어져 버릴 거라는 작은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는 듯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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